< 다시 찾은 네팔, 그리움과 반가움>

[남난우 기동취재부 기자] 음성외국인도움센터(센터장 고소피아)는 지난해 9월에 처음으로 낯선 이국 땅 네팔에 방문을 하고 꼭 1년 만에 다시 찾은 네팔에서의 그리움과 반가움이 교차하는 일정을 보내게 되었다.

이번 일정을 위하여 센터가 일주일간 문을 닫는 관계로 네팔로 출발하기 전 네팔관련 준비사항과 외국인노동자 교육사업의 사업계획을 마무리하느라 분주하고 바쁜 시간을 보내고, 9월10일 (월) 새벽부터 출발하여 인천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입국수속을 마치고 비행기가 이륙하여 네팔에 도착하기 6시간 남짓의 시간은 그리움으로 인하여 어느 때보다 더욱 초조하고 지루하기까지 하였다.

드디어, 네팔 카트만두의 트리부반 국제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은 오후 8시에 가까웠고, 가을비가 촉촉히 반겨주었다.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청사로 들어가는 길목엔 작년에는 없었던 네팔방문 환영문구며, 포토존이 색다르게 설치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꽃장식이 작년과 다르게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공항청사에서의 네팔 체류비자 발급절차와 수하물 라인에서 여행가방을 찾고서야 이번 봉사활동이 있게끔 오랜기간 동안 애써주신 네팔의 머노즈 사께 내외를 만나 격한 포응을 할 수 있었다. 반가움도 잠시 복잡한 공항입구와 주차장 사이에서 조그마한 택시에 지친 몸과 짐들을 싣고 카트만두 시내의 그의 집으로 향하였다. 카트만두 도심은 퇴근시간의 끝무렵 이었지만 여전히 무질서한듯 질서정연하게 오토바이와 자동차들이 줄지어 뿌연 먼지를 뿜어대고 있었다.

우리는 도착하여 짐을 풀기도 전에, 머노즈 사께의 친구 겨짜꾸의 집에 초대되어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환영만찬에 참석하게 되었다. 겨짜꾸는 불교의 나라답게 한 달간 불교수행을 미치고 돌아와 가족들과 잔치 겸 친구의 손님인 우리까지 초대해 주신 것이었다. 소박한 네팔 가정식 식사와 함께 가족들이 돌아가면서 노래와 춤으로 격의 없이 반가움을 표현해 주셨고, 네팔의 아리랑이라고 불리는 고전가요인 ‘RESHAM FIRIRI’라는 노래를 자연스레 함께 부르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새벽을 깨우는 한글의 열기>

다음날 찾은 곳은 우리 대원 머노즈 사께가 한국어 강사로 일하는 PREMIUM ACADEMY와 ORIENT INSTITUTE였다. 수업이 오전 6시에 실시되어 우리는 새벽5시부터 서둘러 준비하여 학원으로 향하였다. 이른 시간임에도 좁은 강의실에 남녀 젊은이 대여섯 명이 곧잘 선생님이 써준 한글을 읽고, 말하며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참고로 네팔에서의 출근시간은 오전 10시경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아침 이른 시간대가 여유가 있어, 오전 6시부터 9시까지가 관심있는 공부를 하기에 좋은 시간대라고 한다.

머노즈 사께씨는 고소피아 센터장을 한국의 음성외국인도움센터 센터장이며 외국인 노동자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강사로 소개하고, 이번에 한국으로부터 외국인 치안봉사대 활동을 위하여 네팔에 왔으며, 오늘 특별강사로 초빙하여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려 한다고 소개하니, 학생들은 열화와 같이 환영하며 강단으로 모셨다.

고소피아 센터장은 ‘오전 6시부터 강의가 있다고 하여 반신반의하며 찾아왔는데, 여러분들의 한글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니 여독의 피곤함도 잊고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소감을 말하였다. 오늘 함께 수업을 했던 네팔학생 중 한 명은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어 한국어를 공부한지 얼마 안되었는데, 갑자기 한국인 원어민 선생님을 만나 그 동안 공부했던 부분을 활용해 볼 수 있어 기분 좋았다’고 하였으며, 열심히 한글을 공부해서 한국의 충북 음성지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을 하며, 수업을 마쳤다.

이어 인근 다른 학원인 ORIENT INSTITUTE로 자리를 옮겨 또 다른 한글수업을 하였는데, 이곳 학원에서도 아침 일찍부터 10여명의 학생이 강의실을 가득 메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한 학생은 한국에서 일하다 귀국하여 한글을 잊지 않기 위해 공부하러 나왔다고 하였는데, 열심히 공부하여 한국어 강사에 도전해 보라는 충고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이 학원의 어닐 선자이 원장님은 ‘한국어를 선호하여 배우려는 학생들은 늘어나는데, 한국어 강사가 부족하여 걱정이라며 유능한 한국어 강사를 소개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이에 고소피아 센터장은 ‘한국에서 머노즈 사께 선생님처럼 유능한 한국어 교사를 많이 양성하고 배출하여 네팔에서도 얼마든지 한국어를 잘 배울 수 있고, 각종 한글 인증시험에 높은 합격율을 내도록 도와 드리겠다’는 자신감을 내보였다.

또한, 학생들이 한글에 대한 열기도 대단하지만, 머너즈 사께 처럼 한국에서 돌아와 주사업으로 건축업에 종사하시면서 한글을 잊지 않기위해 한글사랑 메니아가 되어 한글을 전파하시는 분들이 있어 너무나 존경스러웠다.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아이들>

오후가 되어서야 카트만두 외곽의 빈민촌에 위치한 초등학교(Shree Mahendra Saraswati Sewa Basic School)에 도착하였다. 학교는 카트만두의 최대 야채시장이 인근에 있고, 쓰레기 집하장까지 가까이 있어 냄새가 나고 주변여건이 좋은 편이 아니었다.

교문 앞에 도착 하자마자 다야찬드라 교장선생님은 벌써부터 나와 운동장주변에서 기다리고 계셨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학생들은 반가움에 서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하며 손을 흔들어 반겨주었다. 또한, 고학년 여학생 2명이 나와 네팔 전통춤을 추며 환영해 주었다. 올해에는 교실의 책상과 의자 세트를 비롯하여 학용품과 간식을 전해주었는데, 교실의 책상과 의자가 우리나라 1950년대만도 못한 실정이었으며, 마음 같아서는 전 교실의 책상과 의자를 바꿔주고 싶었지만, 형편이 닫지 못해 못내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여전히 맑고 고운 눈망울의 학생들과는 대조적으로 선생님들의 이마엔 잔주름이 유독 선명하였다.

음성외국인도움센터 고소피아 센터장은 계속된 환영행사에 불교식 합장으로 답례를 하고, 이번 네팔방문 기부활동의 계기와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던 머노즈 사께에게 한국으로부터 진심을 담은 감사장을 전달하였다. 머노즈 사께는 한국에서의 인연이 이곳 네팔에서 이어질 줄은 아무도 몰랐으며, 더욱이 형편이 어려운 네팔학생들에게 큰 선물까지 주셔서 감사하다고 화답하였다.

이곳 교장선생님과 운영책임자는 작년에 이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며, 네팔식 만두인 ‘모모’를 만들어 일행들에게 대접하였다. 내년에도 또 와줄 것을 당부하며, 교장선생님과 운동장에 마련된 네팔의 ‘공부의 신’ 사라스와티(Saraswati) 여신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마무리하였다. 재미있었던 것은 공부의 신 이름이 이 학교의 이름(Shree Mahendra Saraswati Sewa Basic School)에 들어가 있었던 점이고, 모든 학생들이 공부에 대한 열의가 있어 네팔의 미래가 밝게 보였다.

<축제의 시간과 머무는 시간>

셋째날에는 네팔의 고유풍습에 따른 축제의 하나로 ‘TEEJ(띠즈)’DAY라 하여 네팔 여성의 날이라고 한다. 이날은 모든 여성들이 사리라는 빨간색 전통의상을 입고 하루 종일 춤추며 노래하는 날로 직장이나 일터에서도 여성들만 휴무를 갖는다고 한다.

이런 축제일에 우리는 양로원(Himalaya Vriddha-Aashram Kendra)을 찾으며 일년에 한번 쉬시는 축제날에 번거롭게 찾아간 것이 아닌가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걱정도 잠시 양로원 건물 발코니에서 손을 흔들어 환영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이곳을 운영하는 사라라판디 원장선생님의 환한 미소에 그간의 피로가 녹는 듯 하였다.

선생님들 모두가 빨간색 사리를 입고 춤과 노래로 환영해 주었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 운율들이 왠지 한국의 민요와도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년 동안 변화된 것이 있었다면 할아버지, 할머니들 숙소의 벽면에 불교식 벽화를 그리는 중이었으며, 네명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하여 마음이 무거웠다. 얼마되지 않는 양식을 전해드리는 시간에도 선생님들은 계속하여 춤과 노래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 주었고, 몸이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기쁨과 감사의 박수를 보내주시어 몸 둘 바를 몰랐었다.

원장선생님께서는 올해도 잊지않고 멀리서 찾아주어 감사하는 말과 함께 모두가 건강하기를 기원해 주셨다. 얼마 후면 한국도 추석인데, 이곳 네팔의 축제가 3일간 이어진다고 하니 즐겁고 좋은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바라면서 아쉬운 작별로 발걸음을 돌렸다.

<한류를 꿈꾸는 네팔 젊은이들>
이번 네팔 방문을 통하여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새벽잠을 아껴가며 한글공부에 열심이던 네팔 젊은이들이었다. 우리 음성외국인도움센터의 외국인 치안봉사단원이던 비제이 조쉬 또한 카트만두의 한 학원에서 한글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수강생이 한 달이면 100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가 좋았으며, 일본어나 영어보다 더 수강생이 많다고 하니 어깨가 으슥하였다.

그러나, 아직까지 네팔에서의 한국어 보급은 초보단계밖에는 안되는 수준이라 한다. 앞으로도 많은 성장가능성과 비전이 있다고 하니 왠지 마음이 뿌듯하였다. 그리고, 우리 단원 중 머노즈 라이의 딸 제시카는 아직 15살 소녀이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아직 한국말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K-POP에 관심이 많았으며 특히 요즘 미국에서도 잘 나가는 방탄소년단의 열렬한 팬이라 한다. 가족이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일하고 있으니, 자연스레 한국에 대하여 관심도 많아지고 우리가 알리지 않아도 한류의 물결은 이미 세계와 함께하고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려운 네팔의 형편을 생각해보니 대한민국에 대하여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음성외국인도움센터 외국인 치안봉사대가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을 통하여 국제민간외교 협력의 계기가 되기를 희망하였고, 기회가 된다면 우리 치안 봉사대원 16개 나라들을 찾아 ‘사랑과 평화’의 정신을 널리 알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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