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연회 사모합창       

      단장  김신애 사모    

나의 아버지 (1)
나의 아버지는 2012년 2월에 86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기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니 생전에 함께했던 많은 일들이 그리움의 한 자락으로 다가와 추억하여 봅니다.
아버지께서는 인천의 모 중 고등학교 미션 스쿨의 교목으로 35년 동안 일하시다
65세에 퇴직하시고 은퇴 후 20여년을 사시다가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의 믿음의 스승이셨고, 나를 위하여 가장 많이 기도해주신
내 인생의 멘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키우시면서 시행착오 없이 온전하게 키우셨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딸 자식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다른 아버지들 보다 훨씬 더 많으셨다고 자부합니다.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은 지난 1959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러니까 제가 아마 6살 때쯤인가 봅니다.
아버지는 어린 나를 집에서 한 시간은 걸어야 갈 수 있는 거리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셨습니다.
우리집이 인천 만석동의 동일방직 회사 근처였는데 거기서 송월동을 지나 맥아더 동상이 있는 자유공원의 홍여문을 지나 관교동까지 걸어서 유치원에 다니게 하셨습니다.
교육적인 가치나 이런 것은 생각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누님인 나의 고모가 유치원비를 다 대준다며 나를 보내라는 말에 그 곳까지 보내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끌려다니다시피했던, 정말 가기 싫었던 그 유치원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을 많이 남겼던 것 같습니다.
그곳은 거리도 멀 뿐만 아니라 나이가 나 보다 한살 위인 아이들이 대부분이라서
나이로도 내가 기를 못피고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지역적으로도 다른 애들과 거리가 있어서 외톨이였던 것 같습니다.
부모님이 강제로 다니게 했던 유치원, 그곳은 나에게 좋지않은 기억과 함께 마음의 상처를 많이 남긴 나쁜 영향을 준 유치원 교육이었습니다.
한번은 유치원 재롱 잔치에 아버지의 학교 학생들을 모아 놓고 한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많은 중, 고등학생들 앞에서 인사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얼마나 가슴이 두근거렸는지 그 영향이 지금까지 있어서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 앞에 나서면 심장이 두근거립니다.
아버지의 잘못된 교육열로 조기 교육을 받은 저는 그 때 받은 상처로 저의 인격 형성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왔으나 자식을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일념은 강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나 능력은 무시하고 조기 교육만을 고집하며 잘못된 교육을 시켜 일생동안 자녀에게 상처를 주는 우리 아버지와 같은 부모님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 걱정 됩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보내며 내 가정의 건강한 생각과 소중함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에 대한 추억 중 가장 어렸을 때의 추억이었습니다.
                                                경기연회 사모합창단 단장 김신애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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