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웅 기동취재부 기자] 배우 윤여정(74)이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윤여정은 26일(한국시간) 오전 9시부터 미국 로스앤젤레스 LA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미나리’의 순자 역으로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를 무대로 한 한인가족의 아메리칸 드림을 소재로 한다. 인종차별적 경험보다 바퀴 달린 집에 살면서 미국땅에 뿌리를 내리려고 고군분투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면서 미국 이민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제93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이 수상소감을 말하고 있다.

윤여정은 영화 ‘힐빌리의 노래’의 글렌 클로스, ‘보랏2 서브시퀀트 무비필름’의 마리아 바카로바, ‘더 파더’의 올리비아 콜맨, ‘맹크’의 아만다 사이프리드와 여우조연상 트로피를 놓고 경쟁했다.

지난해 남우조연상을 받았고 이번에 수상자로 나선 할리우드 스타 배우 브래드 피트로부터 ‘여정 윤’의 이름이 호명됐다.

브래드 피트는 영화 ‘미나리’를 제작한 플랜 B를 설립한 주인공이다.

시상식 무대에 오른 윤여정의 수상 소감은 시작부터 웃음을 선사했다.

환한 표정으로 박수를 받으며 무대로 올라온 윤여정은 “브래드 피트, 마침내 만나서 반갑다(Finally nice to meet you). 우리가 영화 찍을 때 어디 계셨나요?”라며 웃음을 선사했다.

▲ 시상식을 마친 윤여정 씨,‘미나리’에 함께 출연했던 배우 한예리 씨와 함께 LA 총영사관저에서 한국 특파원단과 기자회견을하고 있다.

윤여정은 “정말 만나 뵙게 되어 반갑다. 나는 한국에서 왔다. 내 이름은 윤여정인데, 유럽분들은 많은 분이 제 이름을 여영이라고 하거나 그냥 정이라고 부르는데 잘못 불렀어도 오늘은 여러분 모두 용서해 드리겠다”면서 이번에도 재치 넘치는 소감을 전했다.

그러면서 “아시다시피 저는 한국에서 왔다. 사실 아시아권에 살면서 서양 TV 프로그램을 자주 봤다. TV로만 방송프로그램 보듯 아카데미 시상식을 봤었는데, 오늘 직접 이 자리에 오게 되다니 믿을 수 없다”며 소감을 이어가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이어 “제가 조금 정신을 가다듬어보겠다”면서 숨을 돌린 뒤 “나에게 투표를 해준 아카데미 관계자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저에게 표를 던져준 분들 너무 감사드린다. ‘미나리’ 가족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무엇보다도 정이삭 감독이 없었으면 내가 이 자리에 설 수조차 없었다. 감독님은 우리의 선장이자 또 나의 감독님이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사실 경쟁을 믿지는 않는다. 글렌 클로즈 배우님의 훌륭한 연기를 너무 많이 봐왔다. 내가 어떻게 글렌 클로즈와 같은 대배우와 경쟁을 하겠나. 다섯 후보는 다 각자의 영화에서 다른 역할을 했다. 미국 분들이 한국 배우들에게 특히 환대를 해주시는 것 같다”면서 “나는 이긴 게 아니라 아마 다른 배우들보다 조금 더 운이 좋아서 이 자리에 서 있는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겸손’과 ‘의미’를 담은 그의 말에 배우들은 박수를 보냈다.

윤여정은 또 “우리 두 아들에게도 감사하다. 두 아들이 항상 저에게 일하러 나가라고 하는데 이 모든 게 아이들의 잔소리 때문이다. 열심히 일했더니 이런 상을 받게 됐다”며 특유의 유머를 담은 감사를 전했다.

마지막으로 “김기영 감독님에게 감사하다. 나의 첫 번째 영화를 연출한 첫 감독님이다. 여전히 살아계신다면 수상을 기뻐해 주셨을 것”이라면서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다”라고 소감을 마무리했다.

배우 윤여정은 아카데미 시상식에 앞서 미국 내 각종 지역 비평가상을 휩쓸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배우조합상(SAG), 영국 아카데미(BAFTA)에서도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일명 ‘오스카상’이라고도 하며,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아카데미협회(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Sciences)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상이다.

한편 아시아 배우가 오스카 여우조연상을 받은 건 1953년 제3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화 ‘사요나라’로 여우조연상을 탄 일본 배우 고 우메키 미요시에 이어 역대 두 번째이자 63년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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