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히루키의 소설 <1Q84>의 주인공 덴고는 일요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일요일 오전이면 유년시절의 그는 NHK이용료 수금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낯선 집들을 찾아나섰다.
그는 억지로 아버지 옆에서 동정심 유발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었고, 그날은 일주일 중에 가장 불편한 하루가 되었다. 매주 일요일이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던 그 기억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일요일'을 불편한 날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 부평경찰서 경무계 경장 김명성

소설을 예로 들거나 학문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유년시절의 경험이 그 사람의 평생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라는데 대해서 동의할 것이다. 또한 같은 이유로 아동에 대한 학대나 성범죄가 피해자에게 더 큰 피해와 슬픔을 가져다준다는 것에도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사회는 아동학대 범죄에 대해서 이렇게 관대한 것일까?
얼마 전 인천의 한 보육원에서 보육교사가 아이들을 때리는 장면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큰 충격을 주었다. 대중의 공분을 샀던 이 사건에서 더욱 충격적이었던 것은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가해교사가 한 "아이들을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통계에 따르면 아동에 대한 폭행사건의 83%이상의 가해자가 친부모라고 한다 . 친부모에 의한 가해행위는 일회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반복적으로 가해져서 고문의 수준에 이른다고 한다.
아동학대의 대부분은 이처럼 그 보호자 및 부모를 통해서 발생하고 또한 그들은 자신의 행동이 '훈육'이라고 생각한다. 더 큰 문제는 (이번의 경우와는 다르게) 가해행위를 인지한 주변사람들도 부모나 보호자의 행위를 훈육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묵인하는 것에 있다.
'자식잘되라고 혼낸거겠지...' 하는 주변의 인식이 오히려 피해아동을 고립시키고, 누구에게도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 참으로 안타깝다.
소위 "크림빵 뺑소니" 사건의 용의자가 자수를 했다. 잡을수 없을 것만 같았던 범인을 자수하게 만든것은 첨단 기술도, 수사기관의 유능한 수사력도 아닌 많은 사람들의 관심때문이었다. 어린 아동에게 평생 씻을 수없는 상처를 주는 아동학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도 결국은 사람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인식의 변화라고 생각한다.
폭력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 위에 "사랑"이나 "훈육"과 같은 어떠한 이름으로 옷을 입히더라도.
부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동학대에 대한 관심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길 희망해본다.

                                                                                                     유태균 기동취재부 기자


부평경찰서 경무계 경장 김명성jnpnes@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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