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섭 기동취재부 기자]  국내 최장기 노사분쟁으로 13년간 이어져 온 콜텍 노동조합과 사측의 분쟁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콜텍 노사는 지난해 말부터 총 9차례의 교섭을 벌인 끝에 4월 22일 잠정합의를 이루고 23일 교섭 타결(합의) 조인식을 가졌다. 콜텍 노동조합과 사측은 이날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합의문에 서명했다. 이날 조인식에는 이인근 콜텍 노조지회장과 김경봉 콜텍 노조 조합원, 박영호 콜텍 대표, 김호규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등이 참석했다.

▲ 23일 오전 서울 강서구 한국가스공사 서울지역본부에서 열린 '콜텍 교섭 합의 조인식'에서 박영호 사장(오른쪽)과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지회장(왼쪽),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이 합의안에 서명한 뒤 악수를 나누고 있다.

콜텍 노사는 ▲과거 정리해고에 대한 회사의 유감 표명 ▲마지막까지 복직을 요구해온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등 3인의 명예복직 ▲콜텍 노조 조합원 25명에 대한 합의금 지급 ▲노사가 상호 제기한 일체의 소송 취하 등을 잠정 합의했다.

이로써 2007년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됐던 콜텍 노동자 중 마지막까지 복직을 촉구한 김경봉, 임재춘, 이인근 조합원 3인은 다음 달 2일 복직하게 된다. 다만, 이들은 지난 투쟁 기간 정년이 다 되어 5월 30일 퇴직한다. 29일간의 복직 근무를 위해 13년을 투쟁해 온 셈이다.

지난 42일간 단식농성을 진행하다 잠정합의문을 받아 든 임재춘 조합원은 "이거 받으려고 13년을 기다렸다. 노동자들이 투쟁하면서 단식하는 건 내가 마지막이면 좋겠다. 젊은 사람들이 굶고 어디 올라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토로했다.

콜트는 세계 기타 시장 점유율이 30%에 달하던 기타생산업체다. 인천에서 전자기타를 만드는 '콜트악기'와 대전에서 통기타를 만드는 '콜텍' 등 2개의 공장을 두고 있었는데, 2007년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들어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인천공장 노동자 3분의 1을 집단으로 정리해고하고, 대전공장을 폐쇄하며 노동자 89명을 내보냈다.

해고된 노동자들은 2008년 5월 해고 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으나 이듬해 1심에서 패했다. 이에 이인근 금속노조 콜텍 지회장은 2008년 10월 14일 한강 망원지구의 송전탑에 올라 고공 단식 농성을 벌였다. 그해 11월에는 노동자들이 본사를 점거했다가 경찰특공대에 의해 강제로 해산되기도 했다. 한 노동자는 정리해고를 규탄하며 분신하기도 했다.

2009년 11월 항소심에서 서울고등법원은 회사가 정리해고를 단행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해 정리해고는 무효라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2011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상고심에서 패소해 논란을 빚었다. 2012년 '회사에 경영상 긴박한 위기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더라도, 장래에 닥칠 위기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났고, 파기환송심을 거쳐 2014년 해당 판결이 확정됐다.

지난해 5월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은 2012년 대법원의 파기환송 결정이 박근혜 정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재판 거래 의혹 중 하나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후 '콜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꾸려지는 등 시민사회 연대가 계속되면서 지난해 12월부터 노사 교섭이 시작됐다. 박영호 콜텍 사장이 분쟁 13년 만에 교섭에 참석하는 등 총 9차례에 걸친 교섭 끝에 4월 23일 명예복직 잠정합의에 이르게 됐다. 이 과정에서 해고 노동자들은 수차례의 고공농성과 단식농성, 천막투쟁 등을 이어왔다.

이인근 노조지회장은 “지난 13년간 힘들고 모진 세월에 마침표를 찍어 기쁘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며 “앞으로는 이러한 잘못된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다시는 없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호규 위원장도 “더이상 정리해고 낙인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콜텍 노사가 중요한 분기점을 만들었다”며 “사측도 결단내린 만큼 앞으로 우리나라를 벗어나 해외에서 사업을 하면서 국내 경험을 반면교사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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